그래핀 하나에 초전도 상태가 넷, 자기장이 오히려 힘을 보탰다

초전도체 뉴스를 보면 몸이 먼저 움찔한다. 2023년 여름 LK-99 소동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할 것이다. 상온 초전도체라는 단어가 며칠 만에 밈이 됐다가, 한국초전도저온학회 검증위가 "초전도체라는 근거가 없다"고 정리하면서 조용히 가라앉았던 그 기억(관련 정리) 때문에, 이번에 MIT에서 나온 그래핀 초전도 논문도 처음엔 반사적으로 의심부터 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번 건 애초에 종(種)이 다른 이야기였다.
자기장이 초전도를 죽이지 않고 살렸다
초전도는 원래 전자 두 개가 반대 스핀으로 쌍(쿠퍼쌍)을 이뤄 저항 없이 흐르는 현상이다. 그리고 자기장은 이 쌍을 갈라놓는 천적이다. 초전도체를 다루는 실험실이 자기장을 최대한 걷어내려 애쓰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MIT 롱 주 교수팀이 Nature에 발표한 논문은 이 전제를 뒤집는다. 마름모꼴로 쌓인 5층 그래핀에 수직 방향 자기장을 걸었더니, 전이온도가 55밀리켈빈에서 90밀리켈빈으로 오히려 올라간 것이다(MIT 뉴스). 밀리켈빈 단위라 절대영도에 거의 붙어 있는 극저온 얘기이긴 하지만, 방향 자체가 반대로 뒤집혔다는 게 핵심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연구팀은 이 조건에서 전자들이 반대 스핀이 아니라 같은 스핀 방향으로 쌍을 이뤘을 가능성을 지목한다. 같은 방향으로 정렬된 스핀쌍은 자기장이 잡아당겨도 쉽게 안 깨진다. 그러니 자기장이 쌍을 부수는 대신 오히려 정렬을 도와준 셈이다. 그 결과 3개 상태는 9테슬라, 그러니까 지구 자기장의 18만 배에 달하는 강한 자기장에서도 살아남았다.
상태가 하나가 아니라 넷이라는 게 왜 더 큰 얘기인가
기존 초전도 이론은 대체로 한 물질이 특정 조건에서 초전도 상태를 하나 갖는다고 가정해왔다. 얼음이 조건에 따라 육방정, 입방정 등 여러 결정 구조를 갖듯 초전도체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제로 같은 시료에서 전자 밀도만 다이얼처럼 돌려가며 4개의 서로 다른 초전도 상태를 골라낸 사례는 드물다. 그래서 이번 결과가 하는 일은 신물질 발견이 아니라 "초전도체는 상태를 하나만 갖는다"는 암묵적 전제 자체를 깨는 것에 가깝다.
다만 이게 곧바로 상온 초전도체를 의미하진 않는다. 여기서 다룬 온도는 여전히 밀리켈빈, 그러니까 우주 배경복사보다도 차가운 영역이다. 상온 초전도체는 이 발견과는 별개의, 훨씬 더 어려운 산이다. 이번 연구가 건드린 건 온도의 한계가 아니라 "초전도 상태가 자기장 앞에서 얼마나 완고할 수 있는가"라는 다른 축이다.
| 항목 | 기존 통념(BCS 이론) | 이번 발견 |
|---|---|---|
| 전자쌍 스핀 방향 | 반대 방향 | 같은 방향 가능성 |
| 자기장의 역할 | 쌍을 파괴 | 일부 상태를 강화 |
| 물질당 초전도 상태 수 | 보통 하나 | 한 시료에서 4개 |
| 전이온도와 자기장 | 자기장이 세지면 낮아짐 | 55mK → 90mK로 상승 |
양자컴퓨터 얘기가 나오는 이유
양자컴퓨터의 초전도 큐비트는 주변 자기장 잡음에 취약해서, 실험실 전체를 자기 차폐로 감싸는 게 일이다. 그런데 자기장을 견디다 못해 오히려 자기장으로 강화되는 초전도 상태가 존재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자기 차폐 부담이 덜한 큐비트 설계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연구팀도 이 부분은 아직 "기초 물리학 관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선에서 멈추고, 구체적 응용은 확답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걸 양자컴퓨팅 혁신으로 바로 연결 짓는 건 성급하다. 다만 큐비트가 자기장에 이렇게까지 무너지기 쉬운 이유 자체가 쌍의 스핀 정렬 방식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같은 스핀으로 쌍을 이루는 초전도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 왜 큐비트 안정성과 맞닿아 있는지는 납득이 간다.
블로그에서 과학 뉴스를 고를 때 기준으로 삼는 게 하나 있다. 발표 매체가 동료심사 저널인지, 그리고 다른 연구팀이 검증할 여지가 있는 실험 설계인지다. 이번 건 Nature 게재고 스위스 바젤대 고자기장 실험실과의 협업까지 거쳤으니, 그 기준으로는 일단 통과다. LK-99 때처럼 재현 실패로 조용히 묻힐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다음에 이 주제를 다시 다룬다면 후속 논문에서 이 4개 상태 중 어느 것이 먼저 이론적으로 설명되는지, 그 쪽을 따라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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