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해변, 유명한 곳과 숨은 곳을 갈라 조사했다 — 인생사진 명소일수록 사람에 치인다

몇 해 전 그리스에서 직접 찍은 바닷가 — 이 글의 섬 해변들은 아직 못 가봤고, 내가 본 그리스 바다는 여기까지였다

몇 해 전 그리스에 갔을 때 나는 아테네만 보고 왔다. 아크로폴리스와 시내를 돌고 나니 일정이 끝나 있었고, 정작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그 새파란 섬 해변은 한 곳도 밟아보지 못했다. 그게 두고두고 아쉬워서 다음에 그리스에 간다면 이번엔 해변 위주로 다니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번엔 작정하고 그리스 해변을 뒤졌다.

그리스에서 직접 찍은 아테네 유적 — 첫 그리스 여행은 아테네에서 끝났다

그런데 검색창에 "그리스 해변"을 치면 상위에 뜨는 곳들이 하나같이 "죽기 전에 가야 할"이라는 수식이 붙은 초유명 명소더라. 나는 여행지에서 사람 많은 곳을 유독 피하는 편이다. 애써 멀리까지 갔는데 인파에 밀려 사진 한 장 겨우 찍고 돌아오는 게 제일 아깝게 느껴져서다. 그러니 예쁜 건 알겠는데 그 예쁨의 대가가 뭘지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유명한 해변과 현지인이 조용히 가는 해변을 갈라서 정리해봤다. 조사해보니 그리스 해변은 예쁜 곳일수록 붐비고 접근이 까다로웠다. 예쁜 사진을 사람에 치이는 값으로 치르는 셈이다. 그러니 "어디가 제일 예쁘냐"보다 "나는 그 대가를 감수할 사람이냐"를 먼저 정하는 게 여행을 덜 망친다.

유명 해변: 사진은 확실하지만 대가가 따라온다

이름값 하는 곳들은 풍경이 압도적인 대신 붐빔과 접근성이라는 청구서가 붙는다. 대표적인 다섯 곳만 봐도 성격이 보인다.

나바지오(자킨토스). 절벽에 둘러싸인 만 안에 진짜 난파선이 놓인, 그 엽서 사진의 원본이다. 육로로는 갈 수 없고 오직 배로만 닿는다. 자킨토스 타운이나 북쪽 포르토 브로미에서 투어 배가 오전 10시쯤부터 늦은 오후까지 줄줄이 들어온다. 배가 몰리기 전에 닿는 이른 편이 사실상 유일한 승부수다.

발로스(크레타 그람부사). 눈처럼 흰 모래와 카리브해 같은 물빛으로 유명한 석호다. 비포장길을 차로 달리거나 하니아·키사모스에서 배를 탄다. 배는 오전 10~12시에 출발하고 성인 요금이 30~40유로다. 다만 리뷰를 보면 막상 내려가면 석호가 생각보다 밋밋하고 해변이 작아 꽤 붐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기대치를 좀 낮춰 가는 편이 낫다.

엘라포니시(크레타). 조개껍데기가 부서져 분홍빛이 도는 핑크샌드 해변이다. 물이 얕아 가족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고 세계 2위, 유럽 1위로 꼽히기도 했다. 문제는 7~8월엔 오전 10시면 주차장이 차고 하루 6천 명이 몰린다는 것이다. 9월이나 10월 초에 가면 물은 오히려 더 따뜻하고 사람은 확 준다.

미르토스(케팔로니아). 흰 자갈과 터콰이즈 물빛이 유명하다. 사진은 오후 빛이 좋지만 조용히 즐기려면 아침이 낫다.

포르토 카치키(레프카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옥빛 바다가 펼쳐진다. 주차장에서 절벽에 깎아둔 가파른 계단 백 개쯤을 걸어 내려가야 발이 모래에 닿는다. 늦은 오후가 그나마 한적하다.

정리하면 유명 해변은 시간대 싸움이다. 이른 아침에 닿거나 성수기를 피해 9월에 가는 것, 이 두 가지가 사진과 한적함을 동시에 건지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현지인이 가는 숨은 해변: 수고를 치르면 한적함이 온다

접근이 조금 번거로운 대신 사람이 적은 곳들이다. 여기부터는 이름이 낯설수록 오히려 값어치가 있다.

세이탄 리마니아(크레타 아크로티리). 하니아에서 20km 떨어진 북동쪽 구석에 숨은 좁은 협곡 해변이다. 내려가는 길이 험해 어느 정도 걸어야 하지만 그 수고가 아깝지 않다는 평이 많다.

카부로트리페스, 일명 오렌지 비치(할키디키 시토니아). 아르메니스티스와 플라타니치 사이에 숨은 작은 낙원이다. 현지인만 아는 자리에 소박한 비치바 하나가 있다.

부투미(안티팍소스 섬). 그리스에서 손꼽히는 비밀 해변이다. 외진 위치 덕분에 그대로 보존됐고 흰 모래와 청록빛 물의 투명함이 압권이다. 여기도 배로만 닿는다.

세이셸(이카리아). 아기오스 키리코스에서 25km 거리에 있는, 분필빛 절벽에 둘러싸인 넓은 모래밭이다. 여전히 현지인과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사이클라데스의 덜 알려진 섬들을 더할 만하다. 폴레간드로스의 호흘리디아, 시프노스의 카마레스·바티는 키클라디아 특유의 조용한 정취가 살아 있고, 레스보스 북부 몰리보스는 성채 아래 자갈 해변에 관광객이 거의 없다. 산토리니와 미코노스가 붐비는 만큼, 이 섬들은 그 반대편에 있는 선택지다.

그래서 어떤 여행자면 어디로 가야 하나

여행 스타일별 그리스 해변 추천 결정 도식 — 인생사진형·조용함형·가족형 갈래와 7~8월보다 9월이라는 공통 규칙

취향에 따라 갈 곳이 꽤 또렷하게 갈린다.

인생사진과 버킷리스트가 목적이라면 나바지오, 엘라포니시, 발로스로 간다. 대신 반드시 이른 아침에 닿고 가능하면 9월에 맞춘다. 붐빔은 각오하되 시간대로 이기는 전략이다.

조용함과 현지 감성이 먼저라면 부투미나 세이탄 리마니아, 폴레간드로스와 레스보스 쪽이 맞다. 가는 길의 번거로움이 곧 한적함의 값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가족 여행이라 얕고 안전한 물이 중요하다면 엘라포니시가 정답에 가깝지만 성수기만은 피한다. 시설이 갖춰진 숨은 해변, 이를테면 펠로폰네소스 기티오 인근도 좋은 대안이다.

어느 쪽을 고르든 통하는 규칙이 하나 있다. 7~8월보다 9월이 낫다는 것이다. 물은 한여름에 데워진 온기가 남아 있고 인파는 빠진다. 성수기의 그리스 해변은 예쁜 사진과 사람에 치이는 피로가 세트로 온다. 시기만 바꿔도 같은 해변이 전혀 다른 곳이 된다.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