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반나절 코스로 다 봤다고 하기엔 아쉬운 이유

안동 여행 후기를 검색하면 하회마을 1시간, 병산서원까지 묶어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는 글이 많다. 그런데 안동이 쌓아온 것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이 시간 안에 담길 마을이 아니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부용대, 그리고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들은 서로 다른 시점에 만들어졌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풍산 류씨 집안이 하회에 자리를 잡았고, 그 집안에서 형제(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가 나와 각각 정자를 짓고 서원을 세웠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제사를 지키며 산다. 이 순서를 모르고 마을만 한 바퀴 돌면 예쁜 기와집 사진만 남고, 왜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는지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가게 된다.

하회마을이 관람 코스로 축소되면 놓치는 것

하회마을을 지형만으로 설명하면 낙동강이 마을을 350도 가까이 휘감아 도는 모양이 전부다. 그런데 이 지형 안에서 풍산 류씨 집성촌이 60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는 쪽이 더 중요한 사실이다. 마을 곳곳의 고택은 세트장이 아니라 지금도 후손이 관리하는 실거주 공간이고, 그 관리의 동력이 바로 조상을 향한 제례와 문중 의식이다. 풍산 류씨 대종가인 양진당(보물 306호)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보물 414호)이 그 중심에 있는데, 두 집 모두 지금 이 순간에도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다. 그러니 하회마을을 볼 때는 골목과 기와지붕의 배치보다 이 마을이 왜 아직도 사람이 사는 마을로 남았는지를 물어보는 편이 낫다. 답은 마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마을 밖 강 건너에 병산서원과 부용대가 있고, 그 두 곳을 봐야 하회의 전체 그림이 맞춰진다.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야 보이는 것

병산서원은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소수서원, 도산서원 등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으로 등재됐다(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통합관리센터). 1613년에 세워졌고, 서원 정문 역할을 하는 누각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로 2020년 보물로 지정됐다(국가유산포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하회마을에서 병산서원까지는 차로 15분, 6킬로미터 남짓이지만 노선버스는 하루 서너 번뿐이라 대중교통만으로 시간을 맞추기는 빠듯하다. 걸어서 가는 사람들은 하회마을 입구에서 유교문화길 표지를 따라 낙동강 둑길과 임도를 거쳐 서원까지 닿는데, 마을 관람까지 포함하면 서너 시간은 잡아야 한다. 원래 만대루는 서원 행사 때 개회와 폐회를 알리던 자리였다. 시간이 지나며 유생들이 모여 여론을 나누는 공간으로 역할이 넓어졌다. 서원이 공부방 하나로 끝나지 않고 지역 유림의 여론이 모이는 자리로 커진 셈이다. 마루에 앉아 앞산과 낙동강을 마주하면 왜 이 건물을 만대루라 불렀는지, 왜 유생들이 여기서 시간을 보냈는지가 몸으로 이해된다. 서둘러 사진만 찍고 나오면 이 감각은 남지 않는다.

부용대에 올라야 보이는 하회마을 전체 모양

부용대는 하회마을 맞은편, 화천을 사이에 두고 솟은 높이 약 64미터의 절벽이다. 예전에는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화천을 그대로 건너 부용대 아래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2019년 3월 안전 문제로 나룻배 운항이 끊겼고, 임시로 놓았던 섶다리마저 그 뒤 홍수에 유실된 채 복구되지 않았다. 지금은 하회마을을 나와 서쪽으로 차로 7킬로미터 가까이 돌아가야 부용대 입구에 닿는다. 정상에 오르면 마을 전체가 물 위에 뜬 연꽃처럼 감겨 도는 모양과 강변을 따라 두른 만송정 솔숲이 한눈에 들어오고, 부용(연꽃)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겸암정사). 부용대 아래쪽으로는 겸암 류운룡이 1567년 지은 겸암정사와, 동생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이후 은거하며 『징비록』을 쓴 옥연정사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옥연정사). 형과 동생이 강 건너로 서로의 정자를 바라보며 지냈다는 배치를 곱씹으면 학문과 수양을 대하는 이 집안의 태도가 그대로 공간에 옮겨진 결과로 읽힌다. 부용대에 올라 마을과 정자, 서원을 한 시야에 넣고 나면 하회마을이 하나의 가족사로 지어진 마을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정리된다.

안동 종갓집이 지금도 제사를 지내는 이유

전국에서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종가는 120여 곳으로 추정된다. 그중 47곳이 안동에 있다(안동시 농업기술센터, 불천위 제사). 불천위는 나라에 공이 크거나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인물에게 주어지는 자격으로, 4대가 지나도 신주를 옮기지 않고 계속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특별한 위상이다. 안동에 이렇게 불천위 종가가 몰린 이유는 결국 이 지역이 조선 성리학의 이론과 실천 양쪽에서 인물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고, 하회마을의 류성룡 역시 그 계보 위에 있다. 제사 준비와 손님 접대의 중심에는 종부가 있고, 최근에는 안동 지역 종가 상당수가 제사 시간을 늦은 저녁으로 옮기는 식으로 현대 생활에 맞춰 조금씩 형식을 조정하고 있다. 전통을 그대로 박제하지 않고 유지 가능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가는 쪽을 선택한 셈인데, 이 조정 자체가 종가문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회탈춤이 유네스코 유산이 된 이유

하회별신굿탈놀이는 2022년 11월 30일 '한국의 탈춤' 18개 종목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외교부 보도자료, 한국의 탈춤 유네스코 등재). 탈놀이에 쓰는 탈의 원형은 마을 안 하회세계탈박물관에 모여 있는데,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국내 탈에 세계 각국의 탈까지 200여 점을 함께 전시한다. 공연 자체는 3월부터 12월까지는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1월과 2월에는 주말에만 마을 탈춤공연장에서 오후 2시부터 한 시간씩 무료로 열린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이 등재를 평가하며 짚은 지점은 볼거리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신분제와 권위를 향한 풍자와 비판이 지금도 유효한 주제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양반과 파계승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탈놀이가 다른 곳도 아닌 유교 질서가 가장 엄격했던 안동에서 전승돼 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하다. 엄격한 신분 질서를 지키던 마을에서 그 질서를 놀리는 놀이도 함께 이어져 왔다. 안동을 유교 질서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느리게 걷는 사람에게 남는 것

안동 시내에서는 안동역이나 안동터미널에서 46번 버스를 타면 하회마을까지 50분 정도 걸리고, 입장료는 성인 5,000원이며 매표소에서 마을 안까지는 셔틀버스가 무료로 다닌다. 관람 시간은 하절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로 좁혀진다. 하회마을, 병산서원, 부용대를 하루에 몰아 보면 결국 이동과 인증샷만 남는다. 이 네 가지, 마을과 서원과 절벽과 종가의 제사 문화가 어떻게 한 집안의 역사로 엮이는지는 걸음을 늦춰야만 눈에 들어온다. 일정을 짠다면 첫날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 둘째 날 아침은 부용대에 올라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시간으로 비워두는 편을 권하고 싶다. 급하게 도는 여행자에게 안동은 예쁜 사진 몇 장을 남긴다. 걸음을 늦춘 사람에게는 한 집안이 600년을 버틴 논리가 보인다. 그 차이가 안동을 다시 찾을지 말지를 가른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