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효과, 온도가 다가 아니었다 — 핀란드 연구가 짚은 진짜 변수는 습도
2015년 여름, 게트윅 공항에서 밤을 쪼개 자고 헬싱키로 들어간 뒤 Onnibus를 타고 포리라는 작은 도시로 갔다. 리옹에서 알게 된 마리아와 에라키의 집에서 2박 3일을 얹혀 지냈는데, 그 집 일정은 관광보다 사우나와 식탁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블루베리를 따고 연어를 구워 먹고, 저녁이면 사우나에 들어갔다. 그때 느낀 공기가 한국 목욕탕의 건식 사우나와 확실히 달랐는데, 뭐가 다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최근 핀란드 위바스퀼라 대학의 연구를 보고 그 정체를 뒤늦게 알았다. 관건은 온도가 아니라 습도였다.

연구가 실제로 밝힌 것 — 습도가 온도만큼 몸을 움직인다
위바스퀼라 대학 연구팀은 사우나의 습도가 온도만큼이나 독립적으로 심박과 심부체온을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Yle). 핵심은 습한 공기에서는 땀이 피부에서 증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증발이 막히면 몸이 스스로를 식히는 장치가 작동을 멈추고, 그만큼 체온과 심박이 더 오른다.
실험은 자원자 69명을 대상으로, 목재·수소·전기·가스 네 종류의 사우나에서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2분간 대기한 뒤 10분간 사우나를 이용했고, 그동안 심부체온과 심박수가 측정됐다. 연구원 이이다 라티카이넨-라우시(Iida Laatikainen-Raussi)는 여기서 흥미로운 실용적 결론을 끌어냈다. 온도를 무리하게 높이지 않아도 습도를 올리면 정상적인 운동과 비슷한 건강상 자극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습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 몸의 냉각 원리

사람 몸이 더위를 견디는 기본 방식은 땀을 흘리고 그 땀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기는 것이다. 건식 사우나처럼 공기가 마르면 땀이 잘 증발해 몸이 식는다. 반대로 습식처럼 공기에 수분이 꽉 차면 땀이 맺힌 채 흘러내릴 뿐 증발하지 못한다. 냉각이 멈춘 몸은 체온을 떨어뜨리려 심박을 더 올리고 혈관을 확장한다. 결국 같은 온도라도 습할수록 심혈관에 걸리는 부하가 커지고, 이 부하가 적당하면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닮은 자극이 된다.
내가 포리의 사우나에서 답답할 만큼 후끈했던 것도 온도계 숫자보다 뜨거운 돌에 물을 끼얹어 공기를 축축하게 만든 탓이 컸다.
핀란드식 사우나가 돌에 물을 붓는 이유 — 뢰윌리
핀란드 사우나에는 뢰윌리(löyly)라는 말이 있다. 달궈진 돌에 물을 뿌려 확 피어오르는 수증기, 그리고 그 순간 몸을 감싸는 열기를 가리킨다. 포리의 그 집에서도 물을 한 국자 끼얹을 때마다 공기가 무겁고 뜨겁게 바뀌던 기억이 있다. 핀란드 사람들이 물을 붓는 건 온도를 올린다기보다 습도를 조절하는 행위였던 셈이다. 이번 연구는 그 오랜 습관이 왜 몸에 효과가 있었는지를 숫자로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익숙한 건식 사우나나 저온 찜질방은 이 반대편에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핀란드식만큼 숨이 턱 막히지 않는데, 온도가 낮아서라기보다 공기가 건조해 땀이 계속 증발하는 덕이다.
포리의 가정집 사우나는 이렇게 생겼다
핀란드에서는 집에 사우나가 딸려 있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마리아네 사우나도 욕실 안쪽에 붙은, 두세 명 앉으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나무 벤치가 위아래 두 단으로 놓여 있는데 위 칸이 훨씬 뜨겁다. 더운 공기가 천장 쪽에 고이니 같은 방에서도 앉는 높이에 따라 체감이 달라진다. 손님인 나는 처음엔 아래 칸에 앉아 있다가 좀 익숙해진 뒤에 위로 올라갔다.

사우나에서 나온 직후 에라키와 찍은 사진인데, 둘 다 얼굴이 벌겋다. 그땐 그냥 더워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 보니 이건 습한 공기 탓에 땀이 증발하지 못해 몸이 열을 버리지 못하고 피부 혈관을 한껏 열어둔 상태의 얼굴이다. 연구가 심박과 심부체온으로 측정한 것이 밖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턱대고 제일 뜨거운 칸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게 이 연구의 실용적 함의다. 온도가 조금 낮아도 습도가 높으면 몸은 충분히 자극을 받는다. 규칙적인 사우나 이용이 혈압을 낮추고 심혈관 사망 위험을 줄이는 것과 연관된다는 대규모 추적 연구도 있다(PMC). 다만 이건 상관관계를 본 것이라 사우나가 원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주의할 점도 뒤집으면 같은 원리에서 나온다. 습도가 높으면 몸이 식지 못하므로 건식일 때보다 과열되기 쉽다. 습식 사우나에서는 시간을 짧게 끊고, 어지럽거나 가슴이 답답하면 바로 나오고, 전후로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게 안전하다. 온도계 숫자만 믿다가 습도를 놓치면, 몸은 생각보다 빨리 한계에 닿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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