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게시판들은 어디로 이사했을까

2000년대 초반 PC 앞에서 옛날 인터넷 커뮤니티를 회상하는 노스탤지어 일러스트

어니 스미스의 Bring Back Crappy Forums를 읽었다. 2000년대 중반 뉴스 디자이너들이 모이던 Visual Editors라는 포럼 얘기였다. 서버는 자주 죽었고 레이아웃은 지저분했지만, 거기서 나눈 대화는 지금 어떤 소셜미디어보다 오래 남는다고 스미스는 회상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옛날 게시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넘어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2001년 8월에 내가 직접 만든 다음카페였다. 이름은 휴먼캐슬. 워크래프트3의 휴먼 종족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으겠다고 만든 팬카페였는데, 나중엔 회원이 4천 명 가까이 됐다. Blast라는 클랜을 그 안에서 만들어 대회도 열고 이벤트도 치렀다. 2003년 3월엔 팀 혼합 경기 대회까지 주최했으니, 고등학생 취미치고는 제법 진지했다. 규칙을 어디까지 세게 만들지, 회원들 자율성을 어디까지 풀어줄지 그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했다. 대회 하나를 열 때마다 사람을 모으는 일보다 준비 기간과 반복되는 리듬을 맞추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 그때 배웠고, 갈등이 잦아질 때는 규칙 자체보다 그 규칙을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하느냐가 분위기를 갈랐다. 그땐 그냥 게임 취미였는데, 돌이켜보면 사람을 모으고 갈등을 조율하고 반복되는 리듬을 만드는 연습을 5년 동안 한 셈이었다.

그 카페가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고 검색을 해봤다. 정확한 카페 주소도 기억이 안 나고, 이름으로 검색해도 걸리는 게 없었다. 다음카페 자체는 지금도 운영 중이고 최근에도 베스트 댓글 기능이 추가되는 등 손을 보고 있지만(다음 고객센터 공지 기준 2년 미방문 카페는 휴면으로 전환된다), 휴먼캐슬이 그 안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지는 나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사를 간 게 아니라, 그냥 아무도 안 찾아가는 채로 조용히 잠긴 것 같다.

싸이월드는 폐업이었다

싸이월드 쪽은 사정이 더 분명하다. 2019년 10월 서버 접속 자체가 끊겼고, 2021년 2월 재개를 선언했다가 2022년에 실제로 다시 열렸다. 그런데 2023년 8월, 120여 일 점검을 이유로 문을 닫더니 그 뒤로 다시 안 열렸다. 2024년 11월 다른 회사로 서비스가 통째로 넘어갔지만 그 이후로도 재개 소식은 없다(나무위키 정리, 디지털조선 보도). 도토리로 배경음악을 사고, 일촌 파도타기로 누가 내 미니홈피에 다녀갔는지 추적하던 그 세계관 전체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다 결국 증발해버렸다. 사진첩에 올려둔 사진, 다이어리에 써둔 글, 배경음악으로 걸어둔 노래까지, 그 시절의 감정을 담아둔 그릇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백업을 미리 해둔 사람만 그 기록을 손에 쥐고 있고, 나머지는 기억에만 남았다.

MSN은 아예 공지 한 장으로 끝났다

싸이월드는 열렸다 닫혔다를 몇 년째 반복하며 서서히 흐려진 쪽이라면, MSN 메신저는 정반대였다. 2013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스카이프로 통합한다는 공지 한 장으로 서비스가 정확히 끝났다(관련 기사).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여지조차 없이 깔끔하게 닫힌 셈이다. 한창 마음이 복잡했던 시절, 한 달 정도 유난히 그 메신저에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누가 로그인했는지 뜨는 상태 표시줄을 몇 번이고 새로고침하던 밤들. 그 감정도, 그 대화창도 이제는 재현할 방법이 없다. 스카이프로 계정을 옮기라는 안내가 있었다지만, 옮긴 건 아이디뿐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함께 문을 닫은 서비스들

내 기억 속 세 곳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사라진 온라인 서비스는 여럿이다.

  • 프리챌: 1999년 시작해 한때 커뮤니티 서비스의 대명사였지만, 2002년 유료화 정책으로 이용자가 대거 이탈했고 결국 2013년 2월 15년 만에 문을 닫았다.
  • 아이러브스쿨: 동창 찾기 열풍을 일으켰던 원조 격 서비스. 2022년 3월 다른 회사가 인수해 재오픈했지만, 2024년 무렵 도메인이 만료되며 다시 접속이 끊겼다.
  • 버디버디: 10대들의 메신저로 불리던 서비스. 2012년 4월 종료 공지가 올라왔고, 그해 6월 30일 완전히 문을 닫았다.
  • 세이클럽: 아바타 채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비스. 채팅의 핵심이던 타키 메신저가 2023년 서비스 개편과 함께 종료됐다.

MSN처럼 공지 한 장으로 끝난 곳도 있고, 싸이월드처럼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다 사라진 곳도 있다. 방식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그 시절 로그인 화면과 함께, 그 안에 쌓아둔 기록도 같이 사라졌다.

이사한 건 사람이었다

정리하고 보니, 옛날 게시판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것 같다. 그 시절 함께 있던 사람들과의 인연은 다른 채널로 옮겨가며 이어지기도 한다. 휴먼캐슬에서 알게 된 몇몇과는 지금도 연이 닿아 있다. 하지만 서비스 자체, 그 게시판의 글타래와 사진과 분위기는 대부분 이사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문을 닫았다. 검색해도 안 나오고, 로그인할 계정도 가물가물하고, 어쩌다 접속이 되어도 예전 그 느낌은 이미 없다. 스미스가 그리워한 크래피한 포럼은 어쩌면 돌아올 수 있는 축에 속하는 운 좋은 경우였는지도 모른다. 내 경우엔 대부분 돌아올 곳 자체가 없어졌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검색창에 휴먼캐슬을 몇 번이나 다시 쳐봤다. 4천 명이 모였던 자리인데 지금은 흔적조차 안 잡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한때는 거기서 벌어진 대회 결과, 회원들 닉네임, 클랜 전적표 같은 게 어딘가에는 데이터로 남아 있을 텐데, 지금 내가 그걸 다시 볼 방법은 없다. 남은 건 그 안에서 4천 명과 함께 대회를 열었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나눌 수 있는 몇몇 사람들뿐이다. 서비스는 없어져도 그때 만든 사람과의 인연만은 다른 채널을 타고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게, 이 모든 걸 되짚어보고 나서 유일하게 남는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