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남는 사이드프로젝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2월 13일, 할 일 목록에 이렇게 적었다. "운동 루틴 재개, 스쿼트 30개에 푸시업 10개." 이틀 뒤로 한 번 미뤘고, 그 주 주간 리뷰에는 '운동 루틴 정상화'라는 한층 비장한 이름으로 다시 올라왔다. 3월의 기록은 더 정직하다. 엿새 연속 공백, 하루 푸시업 40개로 반짝 재개, 다음 날 다시 0개. 적을 때는 분명 진심이었다.

이런 목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1월에 산 다이어리는 2월이 오기 전에 하얗게 남고, 헬스장 회원권은 3월부터 기부가 되고, 큰맘 먹고 연 유튜브 채널에는 영상이 세 개에서 멈춰 있다. 회사 일과 상관없이 혼자 벌이는 일을 전부 사이드프로젝트라고 부른다면, 운동이든 가계부든 블로그든 대부분은 이렇게 조용히 죽는다.

그런데 내 쪽에는 이상하게 안 죽는 것도 둘 있다. 하나는 2014년 일기부터 들어 있는 기록장이고(노트가 3만 장을 넘겼다), 하나는 밤마다 들여다보는 블로그다. 비장한 이름의 운동 루틴이 죽는 동안 이 수수한 둘은 매일 열린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오래 생각해 봤다.

시작은 열정으로 되지만 열정은 반드시 식는다

밤에 따뜻한 조명 아래 노트북으로 작은 개인 도구를 조용히 손보는 메이커의 책상

혼자 벌인 일이 죽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시작은 늘 열정이다. 새로 마음먹은 밤에는 뭐든 될 것 같고, 완성된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문제는 그 열정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열정은 연료라서, 한번 태우고 나면 바닥이 난다.

감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2017년의 한 연구는 한때 인기를 끌다 버려진 취미 개발 프로젝트 104개를 만든 사람들에게 왜 접었는지 물었다. 경쟁 프로젝트에 밀려서가 27건, 쓸모가 시대에 뒤처져서가 20건, 그리고 만든 사람의 시간 부족과 흥미 상실이 각각 18건이었다. 수만 명이 지켜보던 프로젝트도 만든 사람의 시간과 흥미가 마르면 그냥 끝난다는 뜻이다.

응답 중에 이런 육성이 있었다. 긴 휴가 때 구상한 프로젝트였는데 복직하고 나니 시간이 없었다고, 이걸 굴리려면 하루 5~6시간이 필요하다고. 뜨끔했다. 내 운동 루틴도 연휴에 태어났고, 죽은 계획들은 대부분 주말 밤에 태어났다. 열정이 시간을 무한정 공급해 줄 것처럼 계획을 세웠고, 월요일의 일상이 돌아오자 연료가 끊겼고, 남은 건 비장한 이름뿐이었다.

첫 사용자가 나인 것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둘을 뜯어보면 공통점이 하나다. 첫 사용자가 나다. 기록장에는 2014년 4월의 일기부터 어제 먹은 단백질 그램 수까지 들어 있다. 남에게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매일 연다. 지난주의 내가 뭘 했는지 오늘의 내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글이 140편 넘게 쌓였는데 누적 조회수는 7,600회 남짓이다. 편당 쉰 번쯤 읽힌 셈이니, 남에게 읽히는 걸 성공으로 잡았다면 진작 접었을 숫자다. 그런데도 계속 쓰는 건, 글 한 편을 만들려고 그날의 메모를 뒤지고 사진을 고르는 과정이 그대로 내 하루 정리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덕을 본다.

자기가 먹으려고 담근 반찬이 제일 오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행하며 살던 어느 개발자는 다음에 살 도시를 스스로 고르고 싶어서 도시 비교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첫 사용자가 나 자신이면 계산이 달라진다. 남에게 보여줄 결과는 멀지만 내 불편이 줄어드는 건 오늘 당장 확인된다. 완성이라는 상태에 끝내 도달하지 못해도 이미 쓸모가 있다. 쓸모가 있으니 자꾸 열게 되고, 열다 보면 아쉬운 데가 눈에 띄고, 그러면 또 조금 손보게 된다. 이 작은 순환이 열정이 식은 자리를 대신 채운다.

잘 꾸미려는 순간부터 짐이 된다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기 시작하면 하루 거른 날이 빚이 된다. 밀린 사흘 치를 그만큼 예쁘게 채울 자신이 없어서 아예 덮어 버리게 된다. 내 기록장이 12년을 버틴 건 반대로 못생겨서다. 한 줄뿐인 날은 한 줄로, 빈 날은 빈 채로 둔다. 다시 펴는 데 아무 각오가 필요 없다.

가계부도 같다. 완벽한 양식을 만드는 데 주말을 통째로 쓰고 나면, 그 양식을 채우는 일이 새 업무가 된다. 항목을 늘릴수록 손볼 곳이 늘고, 언젠가부터 도구가 오히려 나를 부리기 시작한다. 딱 내가 쓸 만큼만, 굴러가는 최소한으로 두면 부담이 없다. 부담이 없어야 오래 곁에 둔다.

과한 열정도 가끔 독이 된다

작게 유지하기와 짝을 이루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리듬이다. 나는 이걸 몸으로 배웠다. 예전에 취미로 게임을 만들 때,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선 채로 여덟 시간을 내리 코딩하고는 그대로 앓아누운 적이 있다. 이 습관은 사실 아직도 못 버려서, 요즘은 AI와 하루 종일 일 이야기를 하며 지낸다. 열정은 좋은데, 열정 사이사이에 쉬는 시간을 끼워 넣지 않으면 몸이 먼저 계산서를 내민다.

블로그에서도 같은 수업료를 냈다. 여러 채널에 글을 두는데, 한 곳에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500편을 몰아 올렸다가 스팸 사이트로 오인받았고, 그 꼬리표를 지금도 다 떼지 못했다. 그 뒤로 운영 노트에 병목은 양이 아니라 리듬이라고 적어 뒀다. 매일 한두 편씩 나눠 올리는 쪽이, 몰아서 쏟아붓는 쪽보다 오래갔다.

회사 일이라면 기한과 평가가 재촉한다. 혼자 벌인 일에는 그게 없고, 처음엔 이 공백이 단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공백을 스스로 만든 마감으로 메우는 순간 사이드프로젝트는 두 번째 회사 일이 된다. 재촉이 없다는 건 하기 싫은 날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하고 싶은 날에만, 하고 싶은 만큼만 조금씩 고치는 느슨한 리듬이 마감에 쫓기는 리듬보다 오래 갔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남에게 보여주려 만들면 죽고 나에게 쓸모 있으면 산다

남을 위해 크게 만들어 방치된 프로젝트와 나를 위해 작게 만들어 매일 쓰여 살아남은 도구의 대비

그래서 사이드프로젝트의 성공을 다시 정의하게 된다. 성공은 완성도 아니고 수익도 아닐지 모른다. 내가 오늘도 그걸 쓰고 있다는 상태, 그것 자체가 성공일 수 있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만들면 그 남이 나타나기 전에 죽는다. 나에게 쓸모 있게 만들면 남이 없어도 나 하나로 이미 살아 있다. 그리고 남들의 사랑은 그다음 문제다. 내가 사랑해서 만든 것을 남들도 사랑해 줄 확률, 성공의 크기는 결국 그 퍼센테이지에 가깝다.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그것이 오늘도 살아 있게 두는 것이다.

죽은 목록들을 지우지는 않았다. 저것들도 한때는 뭐든 될 것 같던 밤의 기록이니까. 다만 운동 루틴은 다음번에 '정상화' 같은 비장한 이름을 떼고 다시 적어 볼 생각이다. 물 마시러 일어난 김에 스쿼트 다섯 개, 그 정도로 시시하게. 오래 살아남는 것들은 원래 좀 시시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