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슈트라세를 걸으면 빈이 왜 음악의 도시인지 보인다
빈에 처음 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건 미술관도 궁전도 아니다. 거리마다 붙어 있는 콘서트 전단이다. 링슈트라세를 따라 걷다 보면 모차르트 시대 복장을 한 티켓 판매원이 몇 걸음마다 서 있고, 저녁이 되면 국립오페라극장과 무직페어라인 앞으로 정장 차림의 줄이 길게 늘어선다. 이 정도 밀도로 클래식 공연이 일상에 박힌 도시는 유럽에서도 흔치 않다.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작곡가들이 이 도시를 골랐고, 도시는 그들을 붙잡아뒀다. 그렇게 쌓인 유산을 지금까지 습관이자 산업으로 지켜온 셈이다.
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가 하필 이 도시에 자리 잡은 이유
18세기 후반 합스부르크 황실과 귀족 사회는 유럽에서 가장 두텁게 음악가를 후원하는 궁정 문화를 유지했다. 작곡가들이 빈으로 몰려든 배경이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갈등 끝에 1781년 빈으로 옮겨와 죽을 때까지 10년을 이 도시에서 보냈다. 베토벤은 본에서 태어났지만 22세에 빈으로 이주한 뒤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여기서 생을 마쳤다. 슈베르트는 아예 빈 태생이라 떠날 이유조차 없었고, 이후 브람스와 말러도 활동 거점을 이 도시에 뒀다.
결과적으로 한 도시 안에 거장들의 생가와 작업실, 초연 무대가 이렇게 촘촘히 겹쳐 남은 사례는 드물다. 중앙묘지(Zentralfriedhof)에 가면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가 나란히 있고 모차르트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다만 모차르트의 실제 유해는 위치가 확인되지 않은 채 성 마르크스 묘지의 공동묘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기념비와 불확실한 무덤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하는 셈인데, 이 어긋남 자체가 빈이 음악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사실 관계보다 상징을 더 오래 붙잡아 둔다.
무직페어라인 신년음악회가 매년 전 세계 이목을 끄는 이유
이 공연이 특별한 건 매년 1월 1일, 빈 필하모닉이 무직페어라인 대공연장(골든홀)에서 여는 단 한 번의 무대가 전 세계 수십 개국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처음 열린 건 1939년 12월 31일이었고 이듬해부터 1월 1일 공연으로 자리를 굳혀 지금까지 8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왈츠와 폴카를 중심에 두는 프로그램 구성은 해마다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골든홀 벽면은 금박 장식과 여성상 기둥으로 채워져 있고 바닥과 벽 모두 목재라 잔향이 길게 남는다. 이 잔향 덕분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공연장 음향으로 평가받는다. 이 공연장은 평소에도 빈 필하모닉과 빈 심포니 정기 연주회가 열리는 실제 무대다. 신년음악회가 끝난 다음 날에도 같은 자리에서 다른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신년음악회 정규 티켓은 시중 판매가 없고 매년 초 홈페이지 추첨으로만 응모를 받는다. 당일 현장 구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맞다.
국립오페라극장이 도시 재개발의 첫 건물이 된 이유
빈 국립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이 상징적인 건물로 꼽히는 건, 1869년 문을 열며 새로 조성된 순환도로 링슈트라세에 들어선 첫 대형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1857년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옛 성벽을 헐고 순환도로를 놓기로 했다. 이 도시 재개발 계획에서 오페라극장은 가장 먼저 완공되도록 배치됐다. 설계는 1860년 공모를 거쳐 결정됐고, 1869년 5월 25일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로 개관했다. 당시 이름은 빈 궁정오페라였다.
이 극장에는 뒷이야기도 따라붙는다. 설계를 맡은 두 건축가 중 한 명은 완공을 못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한 명은 완공 열 주 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2차대전 폭격으로 건물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가 1955년 베토벤의 '피델리오'로 재개관했다. 지금도 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올리는 레퍼토리 시스템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오페라극장 중 하나라, 며칠만 머물러도 서로 다른 공연을 볼 기회가 생긴다.
쇤브룬궁전과 링슈트라세가 걷는 동선 자체를 공연장으로 만든 이유
여섯 살 모차르트가 실제로 이 궁전 안에서 연주했다. 쇤브룬궁전이 이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궁전 거울의 방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 서서 연주했다고 한다. 지금도 궁전 오랑제리에서는 정기적으로 클래식 공연이 열린다. 궁전 정원은 입장이 무료라 공연 시간 전후로 산책하기도 좋다.
링슈트라세는 옛 성벽을 헐어낸 자리에 만든 순환도로인데, 이 길을 따라 국립오페라극장, 무직페어라인, 부르크극장, 시립공원까지 문화시설이 순서대로 배치돼 있다. 그래서 도심을 한 바퀴 걷는 동선 자체가 자연스럽게 음악·공연 기관 투어가 된다. 다른 도시라면 미술관이나 쇼핑가가 있을 자리에, 빈은 공연장을 앉혀 놓은 셈이다.
카페 문화와 자허토르테가 음악과 얽혀 있는 이유
빈의 카페하우스는 원래 작곡가와 지식인들이 몇 시간이고 눌러앉아 신문을 읽고 토론하던 장소였다. 음악과 자주 묶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카페 첸트랄이나 카페 자허 같은 곳에서는 지금도 저녁 시간대에 라이브 연주를 곁들이는 전통이 남아 있다.
자허토르테의 시작은 18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메테르니히 공작이 손님상에 올릴 디저트를 주문했고, 열여섯 살 견습생이던 프란츠 자허가 초콜릿 스펀지에 살구잼을 넣고 초콜릿 글레이즈를 입힌 케이크를 만들었다. 이후 그의 아들 에두아르트가 1876년 호텔 자허를 열면서 이 케이크를 간판 메뉴로 올렸다. 데멜 제과점도 원조를 주장하며 수십 년간 법정 다툼을 벌였고, 1963년에야 호텔 자허 쪽이 '오리지널 자허토르테' 명칭을 쓰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케이크 하나를 두고 이 정도로 오래 다퉜다는 사실 자체가, 빈이 문화적 상징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클래식 공연을 여행자가 실제로 즐기는 방법
빈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는 데 정장이 필수는 아니다. 깔끔한 평상복 정도면 충분하고, 오히려 여행자에게 더 중요한 건 좌석 등급이다. 무직페어라인과 국립오페라극장 모두 입석 구역(Stehplatz)을 운영한다. 가격은 좌석표보다 훨씬 낮고, 공연 두 시간 전쯤 현장 창구에서 구매한다. 예산을 아끼면서 공연장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기엔 입석이 충분하다. 시야가 가리는 자리도 있다.
신년음악회처럼 특정 시즌에 집중된 공연은 정규 티켓을 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대신 여름철 라트하우스 광장에서 열리는 야외 필름 페스티벌처럼 무료로 대형 스크린 중계를 볼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챙기는 편이 현실적이다. 국립오페라극장은 좌석 앞 화면으로 외국어 자막을 자주 띄워줘 언어 장벽 부담도 적은 편이다.
빈에서 음악을 즐기는 확실한 방법은 유명 공연 하나에 매달리지 않는 쪽이다.
도시 곳곳에 흩어진 무대 중 일정과 예산이 맞는 자리를 고르면 실패가 적다.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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