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이 북극보다 먼저 얼어붙은 이유

지구가 양쪽 극을 비슷한 속도로 식혔을 거라고 나는 막연히 짐작해왔다. 그 짐작부터 틀렸다. 남극은 북극보다 2500만 년이나 먼저 얼어붙었다. 그 시차가 왜 생겼는지 지질 시간표까지 짚어 정리한 채널뉴스아시아 기사가 있어서, 그 층을 하나씩 걷어내며 읽어봤다.
대륙이 먼저 무대를 세웠다
보통 남극 결빙의 정석 설명은 이렇다. 약 3400만 년 전 남아메리카와 남극 사이의 드레이크 해협, 호주와 남극 사이의 태즈메이니아 통로가 잇따라 열리면서 남극 대륙을 한 바퀴 도는 남극순환류가 생겼고, 이 해류가 남극을 저위도의 따뜻한 바닷물로부터 고립시켰다. 여기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임계치 아래로 떨어지면서 냉각이 겹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는 에오세-올리고세 경계와 겹치고, 관련 위키백과 문서에도 이산화탄소 하강과 대형 빙상 형성이 함께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 설명만으로는 빈틈이 남는다. 왜 하필 남극 대륙 쪽에서만 이 조건이 맞아떨어졌느냐는 질문이다. 사우샘프턴 대학의 토머스 거논과 테아 힝크스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새 연구는 그 빈틈을 지질 시간표로 메운다. 아프리카와 남극이 갈라지기 시작한 1억 6000만 년 전부터 맨틀 파동이라는 지질 현상이 동남극 지각을 서서히 밀어 올렸고, 그 결과 감버츠예프 산맥이 솟았다. 지대가 해발 1.5에서 2킬로미터까지 솟아야 눈이 녹지 않고 쌓이기 시작하는데, 6000만 년 전에는 동남극의 3분의 1만 이 높이에 닿았고 4500만 년 전에는 닿는 지역이 크게 늘었다가 3400만 년 전에 이르러서야 90퍼센트가 조건을 채웠다. 그러니까 3400만 년 전은 대기가 식은 시점이자 지각이 이미 충분히 솟아 있던 시점이었다. 지각이 먼저 높이를 만들어 둔 덕에, 대기가 식자마자 빙상이 그 자리에 바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당시 지구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5도가량 높았는데도 고지대에서는 연중 눈이 남았다는 대목이 그 증거다.
북극은 왜 2500만 년을 더 기다렸나

북극이 이렇게 늦은 이유는 오히려 단순하다. 북극에는 애초에 감버츠예프 산맥처럼 융기할 대륙이 없다. 북극점 자리는 바다다. 육지가 없으니 맨틀 파동이 밀어 올릴 지각도 없고, 고도라는 지렛대를 쓸 방법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북극권은 순전히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훨씬 더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린란드는 동서 양쪽이 융기하면서 1000만 년 전에서 500만 년 전 사이에야 고지대 빙상의 씨앗을 갖췄고, 북반구 전체가 지금 같은 빙하기 리듬에 들어간 건 약 260만 년 전 파나마 지협이 완전히 닫혀 대서양과 태평양 해류가 갈라지고 나서다. 남극과 비교하면 한참 뒤의 일이다. 결국 남극과 북극의 시차는 해류나 대기 조성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얼음이 들러붙을 지형적 발판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였다.
원인 하나로 설명하고 싶은 유혹
과학 소재를 다룰 때 늘 걸리는 함정이 하나 있다. 기사 제목에 뽑힌 원인 하나만 옮기고 끝내고 싶은 유혹이다. 현상 하나를 해류 탓이나 이산화탄소 탓으로 한 줄에 욱여넣는 게 편하니까. 그런데 남극 결빙은 대기와 해류, 지각 융기가 각자 다른 속도로 돌던 시계가 특정 시점에 맞물린 결과다. 어느 하나만 짚으면 절반짜리 설명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가 더 남는다. 지금 벌어지는 온난화도 거꾸로 같은 눈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음이 들러붙는 데는 지형이 높이를 갖추는 수천만 년이 필요했지만, 그 위에 쌓인 얼음이 녹는 데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쌓이는 시계와 녹는 시계가 이렇게 다른 속도로 돈다는 걸 떠올리면, 탄소 배출의 71%가 아직 값을 치르지 않는다는 현실이 더 무겁게 읽힌다. 다음에 극지 기사를 쓸 일이 생기면, 원인을 한 줄로 줄이기 전에 이 산맥 이야기부터 다시 펼쳐볼 생각이다.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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