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소매치기가 유난히 많은 이유, 그리고 안 당하고 여행하는 법

로마 지하철 A선, 테르미니에서 문이 열리자 사람 여럿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온다. 딱히 붐빌 시간도 아닌데 유독 내 주변만 빽빽해진다. 누군가 등을 툭 치고, 앞사람은 이유 없이 멈춰 서고, 옆에서는 지도를 펼쳐 길을 묻는다. 몇 초 뒤 문이 닫히고 그 무리가 우르르 내리면, 그제야 뒷주머니가 가벼워진 걸 깨닫는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관광지에서 이런 장면은 특별한 불운이 아니라 거의 정해진 각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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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관광 밀집이라는 구조다
소매치기가 많은 도시를 두고 흔히 '그 나라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건 틀린 진단이다. 사람보다 조건을 먼저 봐야 한다.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몰리는 도시일수록, 한자리에 현금과 여권과 스마트폰을 든 방심한 이방인이 밀도 높게 모인다. 콜로세움 앞 광장, 스페인 광장, 파리와 바르셀로나의 명소 주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지하철과 기차역은 전부 그런 조건이 겹치는 지점이다. 노리는 쪽 입장에서 이만큼 효율 좋은 사냥터가 없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조를 짜서 움직인다

관광지 소매치기가 까다로운 이유는 팀플레이에 있다. 한 명이 길을 묻거나 시비를 걸어 시선을 끄는 동안, 다른 한 명이 가방을 열고, 세 번째가 빼낸 물건을 곧바로 넘겨받아 사라진다. 서명을 받아 달라며 클립보드를 들이미는 사람, 갑자기 인형을 안기는 사람, 바닥에 뭔가를 쏟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대개 진짜 목적이 따로 있다. 소동이 벌어지면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게 되는데, 정작 손은 내 가방으로 향한다. 시선을 뺏기는 그 순간이 노림수다.
처벌이 약하다 보니 회전이 빠르다
이 구조가 오래 유지되는 데는 제도적 이유도 있다. 단순 절도는 대부분 경범죄로 다뤄져 처벌이 가볍고, 붙잡혀도 금방 풀려나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피해액이 크지 않고 여행자는 곧 출국해 신고나 재판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점도 한몫한다. 결국 위험 대비 이득이 좋은 일이 되고, 그래서 같은 지역에서 같은 수법이 계속 반복된다. 여행자가 기댈 건 사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 예방뿐이라는 뜻이다.
가방은 앞으로, 뒷주머니는 비운다
대비의 절반은 물건을 어디에 두느냐에서 갈린다. 크로스백은 등이나 옆이 아니라 몸 앞으로 돌려 손이 닿는 위치에 둔다. 지퍼가 몸 안쪽을 향하게 메고, 붐비는 곳에서는 가방 위에 손을 얹고 다니는 편이 좋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꽂는 건 사실상 가져가라는 신호다. 백팩을 등에 멘 채 지하철을 타면 뒤에서 열려도 알 수가 없으니, 사람 많은 구간에서는 앞으로 돌린다. 겉으로 비싼 시계나 카메라를 드러내는 것도 표적을 자처하는 일이다.
지하철, 명소, 기차역에서 특히 신경을 곤두세운다
경계의 강도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둔다. 실제로 주이탈리아 대한민국 대사관도 테르미니역과 지하철, 콜로세움과 스페인 광장 일대를 소매치기 다발 지역으로 안내한다. 승하차로 몸이 붙는 지하철, 사진 찍느라 정신이 팔리는 명소 앞, 짐을 든 채 두리번거리는 기차역이 세 곳의 고비다. 이곳에서는 탈 때와 내릴 때, 그리고 누군가 부자연스럽게 가까이 붙을 때 반사적으로 가방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인다. 갑자기 주변이 빽빽해지면 그 자체를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는 게 안전하다.
한곳에 몰아 두지 않고 나눠 담는다
마지막은 분산이다. 현금과 카드, 여권을 한 지갑에 몰아 두면 그 하나를 잃는 순간 여행 전체가 흔들린다. 하루 쓸 현금만 지갑에 넣고, 예비 카드와 여권은 숙소 금고나 안쪽 주머니에 따로 둔다. 여권은 원본 대신 사본이나 사진으로 갖고 다녀도 대개 충분하다. 앞서 말한 가짜 소동, 길 묻기, 서명 요청 같은 접근에는 일단 가방부터 감싸고 거리를 두면 된다. 소매치기는 방심을 먹고 사는 범죄라, 겁먹을 필요는 없고 대신 몇 가지 습관만 몸에 붙이면 대부분 피할 수 있다. 유럽 관광지가 위험한 게 아니라, 준비 없이 방심한 여행자가 위험할 뿐이다.
참고: 주이탈리아 대사관 안전공지, 로마 지하철 소매치기 주의 · 주이탈리아 대사관 안전공지, 로마 주요 위험지역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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