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하고 나왔는데, 아직 아무 데도 안 뽑아준다

퇴사 순간의 당당한 뒷모습과 그 이후 홀로 구직 화면을 보는 모습을 좌우로 대비한 개념 일러스트

며칠 전 일본 트위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퇴사하는 날 상사가 "너는 어디 가도 안 통해"라고 말했고, 본인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저는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싶습니다"라고 받아치고 나왔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표를 던지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대사도 좋고, 타이밍도 좋다. 올라오자마자 인용과 답글이 붙기 시작해서, 하루 만에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꽤 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어서 같은 사람이 올린 글은 이랬다. 전혀 아무 데도 채용이 안 된다고. 농담 아니었죠, 라고 스스로 못박아 뒀다. 그러면서도 예전 회사로 돌아가도 되냐고 물었다. 뒤에 ㅋㅋ까지 붙어 있었다. 웃으면서 쓴 문장이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를 감동 미담으로 소비하면 틀린다. 미담은 보통 이런 식으로 끝난다. 결국 더 좋은 곳에 갔다, 상사 말이 틀렸다는 게 증명됐다, 가능성을 믿은 게 옳았다. 그런데 본인이 스스로 그 결말을 부쉈다. 남은 건 이력서에 뚫린 몇 주와 얇아지는 통장 잔고다. 웃긴 것도 아픈 것도 이 시차에서 나온다. 상사에게 되받아친 문장과 재취업이 안 된다는 고백 사이에 흐른 시간은 길어야 며칠에서 몇 주였을 것이다. 퇴장할 때는 대사가 필요하고, 돌아올 때는 자조가 필요한데, 그 둘이 이렇게 가까운 시차로 같은 사람 입에서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댓글 반응은 갈렸다. 상사의 그 말 자체가 낯설지 않다는 쪽도 있었다. "어디 가도 안 통한다"는 말은 사람을 붙잡거나 기분 나쁘게 보내고 싶을 때 튀어나오는 흔한 협박일 때가 많다. 실제로 그 사람의 시장가치를 재서 나온 말인 경우는 드물다. 비슷한 말을 들었다는 사람 중에는 오히려 다음 회사가 훨씬 편했다는 댓글도 있었다. 그 말에는 그 사람의 실력보다 그 조직의 속사정이 더 많이 묻어 있었다는 뜻이다. 반대쪽은 더 현실적이었다. 다음 자리를 정하지도 않고 왜 나갔냐는 물음이다. 이 물음도 틀리지 않다. 이직 시장에서 재직자는 스카우트할 대상이지만 구직자는 그저 재취업 대상자로 취급된다는 게 이직 컨설턴트들이 흔히 하는 조언이다. 신분이 바뀌는 순간 협상 카드 하나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멋진 대사는 퇴사하는 순간에는 통하지만, 그다음 달 통장 잔고 앞에서는 유효기간이 짧다.

나도 2023년 늦가을에 비슷한 갈림길 앞에 서본 적이 있다. 다니던 회사에서 오후에 면담 자리로 불려갔다. 구조조정 명단에 내 이름이 있다고 했다. 그날은 일단 나갈 생각이 없다고 말해뒀고, 다음 날 저녁에는 혹시 몰라 한글 이력서를 다시 썼다. 예전 프로젝트 이력을 정리하느라 세 시간 넘게 붙잡고 있었다. 각오도 새로 다졌다. 파일명에 그날 날짜를 박아 저장까지 해뒀으니 마음이 꽤 선명했던 셈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판단이 바뀌었다. 그 며칠 사이 이직 시장을 슬쩍 찔러본 결과와, 남았을 때 회사가 제시한 조건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결국 나가지 않고 남는 쪽을 택했다. 이력서까지 새로 쓴 사람이 왜 남았냐고 물으면 딱히 극적인 이유는 없다. 그냥 따져보니 남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 며칠을 지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각오와 실행은 다른 근육을 쓴다는 것이다. 통보를 받은 그날 밤에는 누구나 비장해진다. 문제는 그 비장함이 다음 날, 다음 주, 다음 달까지 똑같은 온도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위터의 그 사람도 아마 퇴사하는 순간에는 정말로 가능성을 믿었을 것이다. 상사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은 마음, 진짜 신념이 뒤섞였을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말한다. 위기의 순간에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나은 문장으로 포장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그 문장이 트위터에 남았다는 것뿐이다.

"예전 회사로 돌아가도 되나요"라는 물음은 겉보기엔 농담이지만 그 안에 방어가 들어 있다. 먼저 웃어버리면 남들이 웃을 때 덜 아프다. 스스로 "역시 안 되더라"를 먼저 말해버리면, 남이 그 말을 하기 전에 자기가 그 말의 주인이 된다. 자조는 실패를 다루는 방법 중에서 꽤 영리한 축에 속한다. 슬프기도 하고, 동시에 똑똑하기도 하다.

돌아가도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할 거라는 댓글도 있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한번 그런 말을 남기고 나간 사람을 다시 받아주는 조직은 드물고, 받아준다 해도 그 문장은 회의실 공기 어딘가에 남는다. 상사도 기억하고 본인도 기억하지만 아무도 먼저 꺼내지 않는 문장으로.

이 이야기가 하루 만에 이렇게 퍼진 이유도 아마 거기 있을 것이다. 다들 한 번쯤 멋진 문장으로 무언가를 정리해본 적이 있고, 그 문장이 현실 앞에서 삭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읽다 보면 마음은 남의 실패를 비웃는 쪽보다, 자기가 아는 감각을 남의 이야기에서 다시 확인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그러게 왜 대책 없이 나갔어"라고만 말하고 넘어가면 절반만 읽은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 말을 하는 우리도 비슷한 순간에 비슷한 선택을 할 뻔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아직 결말은 없다. 채용이 안 되고 있다는 사실만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사의 말이 예언이었는지 그냥 기분 나쁜 한마디였는지는 시간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퇴사하는 순간의 문장은 이력서 경력란에 적히지 않는다. 그 뒤에 남는 건 결국 다음 자리를 구했는지, 못 구했는지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사람이 그날 그렇게 말한 걸 후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오와 결과가 어긋나는 건 흔한 일이고, 그 어긋남이 그날의 문장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다음에 비슷한 갈림길이 온다면, 비장한 문장을 고르는 데 쓴 에너지의 절반쯤은 다음 자리를 알아보는 데 먼저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가능성을 믿는 것과, 그 가능성이 실현될 때까지 버틸 계획을 짜는 것은 원래 다른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