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남기고 글은 줄이고 싶다, 그런데 사진만 두진 못한다

아이슬란드 싱벨리어 호수의 일몰
아이슬란드 싱벨리어. 해 지던 저녁, 물이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요즘 블로그에 글을 덜 쓰고 싶다. 사진만 올려두고 싶을 때가 있다. 다녀온 곳, 먹은 것, 그날의 빛. 거기에 굳이 긴 설명을 붙여야 하나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

글이 너무 많아진 시대

이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는 안다. 글이 너무 많아졌다. 2025년에 새로 올라온 영어 글의 절반 이상이 사람이 아니라 AI가 쓴 것이었고, 'AI 쓰레기'라는 뜻의 AI slop이라는 말이 그 해 부쩍 퍼졌다. 정보는 넘치는데 읽을수록 불안정하다. 사람이 쓴 건지 기계가 채운 건지 모를 문장을 지나다 보면, 글 자체에 피로가 쌓인다.

그래서 사진이 좋아진다. 사진은 적어도 거기 있었다는 증거다. 꾸며낼 수 없고, 채워 넣을 수 없다. 글이 의심스러워질수록 사진은 단단해진다.

나도 그런 글을 꽤 솎아냈다. AI에게 시켜 만든, 정보는 맞지만 영혼이 없는 글들. 솎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하다. 그래서 요즘은 솎아내기 전에 다른 걸 고민한다. 영혼 없는 글에 영혼을 불어넣을 방법은 없을까. 더 나은 모델을 쓰면 되는 걸까. 답은 아직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진은 그냥 거기 있다. 솎아낼 것도, 불어넣을 것도 없이.

짧게 두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니다

덜어내려는 흐름은 곳곳에 있다.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 블로그가 다시 늘었고, 미술관조차 작품 옆 설명을 더 짧게, 스캔하듯 읽히게, 관람객이 스스로 결론 내리도록 바꾸고 있다. 길게 늘어놓는 것보다 핵심만 두는 쪽이 신뢰를 얻는 시대다.

나는 이걸 짧음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 말하지 않는 것. 사진 한 장과 한 줄이면 충분할 때, 굳이 열 줄로 늘리지 않는 것.

그런데 사진만 두는 건 다른 문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함정이 있다. "그럼 사진만 쭉 늘어놓으면 되지 않나." 가끔 사진만으로 채운 블로그를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핀터레스트나 텀블러처럼 이미지가 벽처럼 쌓인 걸 보고 있으면, 예쁘긴 한데 어딘가 공허하다. 그건 보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만든 사람의 취향을 전시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허영처럼 보인다.

설명이 닿지 않는 미술이 그렇다. 연구를 봐도, 벽에 붙은 한 줄이 없으면 추상적이고 낯선 작품일수록 관람객에게 멀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설명을 읽고, 다시 작품으로 돌아간다. 설명은 군더더기가 아니라 들어가는 문이다. 그 문이 없으면 대부분은 문 앞에서 돌아선다.

덧붙이면, 텀블러가 기울었던 건 사진을 나열해서가 아니라 2018년 성인물 금지 정책 탓이었다. 그러니 "이미지만 쌓으면 망한다"는 게 아니라, 이미지만으로는 전달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비움이 아니라 덜어냄

그래서 내가 글을 줄이고 싶다고 할 때, 그건 글을 없애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다. 사진을 살리는 최소한의 글. 이게 어디였는지, 그때 무슨 마음이었는지, 한두 줄. 조용하지만 맥락은 있는 글.

실제로 이 블로그의 여행기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진마다 긴 해설 대신 한 줄 캡션으로 '여기가 어디였고 그때 무슨 마음이었는지'만 남기는 식이다. 기타큐슈 골목도, 아이슬란드 호숫가도 그렇게 정리했다. 길게 쓰지 않아도 그 한 줄이 사진을 '내 것'으로 묶어준다. 캡션이 빠진 같은 사진은, 며칠만 지나도 내가 봐도 어디였는지 흐려진다.

AI가 글을 쏟아내는 시대에 내가 피하고 싶은 건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텍스트다. 그리고 사진만 벽처럼 쌓을 때 피하고 싶은 건 침묵이 아니라 맥락 없는 전시다. 결국 같은 이야기다. 양쪽 다, 내가 싫은 건 전달되지 않는 것.

사진은 남긴다. 글은 줄인다. 하지만 사진만 두진 않는다. 한 줄이라도, 그 사진이 왜 거기 있는지는 남겨둔다.

그 한 줄을 지금은 내가 쓴다. 언젠가는 내 생각을 좀 더 잘 반영하는, 영혼이 담긴 AI가 그 한 줄을 거들어줬으면 좋겠다. 솎아내지 않아도 되는 글. 그런 게 가능해지는 날까지는, 사진은 내가 찍고 글은 내가 줄인다.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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