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씻어야 정상일까, 정성스런 삶이라는 새 교복

질문 하나로 시작하자. 머리는 며칠에 한 번 감는 게 맞을까. 매일? 이틀에 한 번? 한국에서는 매일 감는 사람이 가장 많다. 한 조사에서 하루 한 번이 54.8퍼센트, 이틀에 한 번이 25.2퍼센트, 하루 두 번도 10.7퍼센트였다. 샤워도 비슷해서 절반 가까이가 매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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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삶은 위생이나 루틴의 정답을 정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고른 정성과 남이 강요한 정성을 구분해 보는 글이다. 머리 감는 횟수, 샤워 빈도, 정리 습관은 하나의 기준으로 서열화하기보다 몸 상태와 생활 리듬에 맞춰 선택하는 편이 낫다.
그런데 이 "당연함"은 세계 기준으로 보면 전혀 당연하지 않다. 유로모니터가 16개국을 조사했더니 샤워 횟수 글로벌 평균은 주 3.5회였다. 미국과 일본이 주 4회, 호주는 주 3회, 중국과 프랑스는 주 2.5회에 그쳤다. 한국은 거의 매일 씻는,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나라다. 프랑스 사람이 보면 한국인은 과하게 씻는 거고, 한국 사람이 보면 프랑스인은 안 씻는 거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하나다. "어디까지 씻어야 정상인가"에는 정답이 없다. 정성의 기준은 보편 진리가 아니라 문화이고 취향이다. 이 사실을 붙잡고 정성스런 삶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정성스런 삶이라는 새 교복
정성스러운 삶이라는 말은 처음엔 착하게 들린다. 깨끗한 방, 정돈된 싱크대, 잘 챙긴 끼니, 자기 전 바르는 로션. 분명 삶을 조금 낫게 만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은 따뜻한 권유가 아니라 성적표가 됐다. 잘 살고 있는지, 어른으로서 기본은 갖췄는지 판단하는 기준. 기본기가 너무 빨리 도덕이 되어버린 거다.
오해는 말자. 예전의 "거칠게 사는 게 멋"이라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벗어둔 양말과 쌓인 설거지가 누군가의 노동 위에 얹혀 있던 시절은 끝나야 했다. 다만 잘못된 특권이 사라지는 것과, 새 규범에 적응 못 한 사람을 자기책임으로 모는 건 다른 일이다. 정성이 남을 향해 겨눠지는 순간, 그건 다정함이 아니라 새 교복이 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단정하고 건강하고 취향 있어야 한다는 압박.
인스타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이 압박의 진앙지는 대개 화면 속이다. 누군가의 인스타 냉장고 사진을 보면 위축된다. 칸막이, 라벨, 색깔별 채소. 저 사람은 삶을 통제하는데 나는 못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게 있다.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다르다. 인스타에 올라온 그 완벽한 냉장고는 매일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날 정리했을 수도 있고, 잘 나온 한 칸만 찍었을 수도 있다. SNS는 삶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삶 중에서 가장 보여줄 만한 한 장면을 편집해 보여준다. 우리는 남의 편집본을 내 원본과 비교하면서 진다.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아니다.
정성도 결국 취향이고, 건강한 사람은 SNS를 덜 한다
머리 감는 횟수에 정답이 없듯, 정성스런 삶도 결국 취향에 가깝다. 라벨 붙인 냉장고가 행복한 사람이 있고, 대충 넣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전자가 후자보다 나은 인간인 게 아니다. 그냥 결이 다른 거다. 정성을 즐기는 사람은 그게 취향이라 하는 거지, 그게 인간의 의무라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도 든다. 심적으로 정말 건강한 사람들은 그걸 굳이 SNS에 안 올린다. 자기 만족으로 끝내고 조용히 산다. 보여줄 필요를 못 느끼니까. 피드에 끝없이 전시되는 완벽한 삶들은, 어쩌면 그만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니 남의 전시를 내 기준으로 삼는 건, 가장 보여주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대를 보고 내 무대 뒤편과 비교하는 셈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정직해져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지금 블로그를 쓰고 있다. 이 글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며 쓴다. 보여주기를 비판하면서, 나야말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인정한다. SNS를 하고 블로그를 쓰는 것도 어쩌면 타고난 기질이다.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해 내보이는 게 행복하고, 거기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누군가는 조용히 혼자 만족하는 게 편하고, 나는 꺼내 보여줄 때 살아 있다고 느낀다. 이건 우열이 아니라 성향이다. 보여주기 좋아하는 사람이 얕은 것도 아니고, 안 보여주는 사람이 깊은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르게 생긴 거다. 내가 블로그를 쓰는 건 정성스러운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내 방식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정성은 언제나 선택지여야 한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정성은 언제나 선택지여야 한다. 의무가 아니라.
정성스런 삶을 즐기는 사람은 즐기면 된다. 라벨 붙은 냉장고가 행복을 준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나처럼 보여주는 게 기질인 사람은 블로그를 쓰면 된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다만 어느 쪽이든 노예가 되지는 말자. 정성스럽게 못 산 날 자신을 게으름뱅이로 단죄하지 말고, 인스타에 올릴 만한 삶이 아니라고 내 하루를 깎아내리지 말자.
가장 경계할 건 이거다. 정성도, SNS도, 블로그도, 시작은 내 즐거움이었는데 어느새 그것에 끌려다니는 것. 좋아요 숫자에 기분이 정해지고, 남의 냉장고에 내 자존감이 흔들리고, "오늘도 갓생 인증을 못 했다"는 죄책감에 잠 못 드는 것. 그 순간 도구였던 것이 주인이 된다.
머리는 매일 감아도 되고 이틀에 한 번 감아도 된다. 냉장고는 라벨을 붙여도 되고 대충 넣어도 된다. 블로그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전부 선택지다. 내가 고르는 한 그건 정성이고, 누가 시켜서 하는 순간 그건 교복이 된다. 좋은 삶은 사람을 줄 세우는 쪽이 아니라 살리는 쪽이다. 오늘 가능한 만큼만 닦고, 가능한 만큼만 보여주고, 그 절반은 내가 정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참고: 위생 습관 통계 출처 — 위키트리(유로모니터 인용), catalk.kr, You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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