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불이 들어오던 그 맥북, 우리는 왜 못 버릴까

내 친구는 아직도 흰색 맥북을 쓴다. 덮개를 닫으면 사과 로고에 불이 들어오던, 그 시절 모델이다. 요즘 카페에서 그걸 꺼내면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본다. 신기해서 보는 눈도 있고, 안쓰러워서 보는 눈도 있다. 친구는 개의치 않는다. "느려도 글은 써져"라고 말하며 또 자판을 두드린다. 배터리는 30분도 못 가서 늘 충전기를 물고 산다. 그런데도 안 바꾼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나도 6년 된 맥북을 똑같이 못 버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맥북을 오래 쓴다
이게 나와 내 친구만의 유난은 아니었다. 찾아보니 통계가 그렇게 말한다.
맥과 맥북의 하드웨어 수명은 보통 5년에서 8년, 평균 7년쯤으로 본다. 가볍게 쓰면 7년에서 9년까지도 간다. 애플이 macOS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기간도 출시 후 대략 7년이다. 즉 맥북은 설계부터가 오래 쓰게 되어 있는 물건이다.
더 흥미로운 건 사용자들의 태도다. 미국에서 맥을 쓰는 사람 중 3년 이상 같은 기기를 보유한 비율이 56%까지 올라왔다. 2020년보다 16퍼센트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1년도 안 돼 바꾸던 사람들은 줄고, 오래 쓰는 사람들이 늘었다. 한국 커뮤니티에서도 "맥북 몇 년 쓰세요"라는 질문에는 늘 5년, 7년, 10년 넘었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신제품의 획기적인 기능이 줄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안정성과 내구성이 좋아졌다는 것. 쉽게 말하면, 굳이 안 바꿔도 멀쩡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통계로 안 잡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못 버리는 거다. 안 바꾸는 게 아니라.
고장이 안 나서, LG 전자레인지처럼
맥북을 못 버리는 첫 번째 이유는 어이없게도 너무 안 고장 나서다.
집에 십 년 넘은 LG 전자레인지가 있다. 디자인은 촌스럽고 기능은 단순한데, 고장을 안 난다. 새 걸 사고 싶다가도 멀쩡히 돌아가는 걸 보면 버릴 명분이 없다. 맥북이 딱 그렇다. 6년을 썼는데도 아침에 열면 조용히 깨어나고, 글을 쓰면 글이 써지고, 사진을 만지면 만져진다. 느려졌다지만 일을 못 하게 막을 정도는 아니다.
고장이 나면 차라리 쉽다. "수리비가 새것 값이네" 하고 보내주면 된다. 그런데 맥북은 그 결정적 순간을 안 만들어준다. 애매하게 잘 돌아가니까, 버릴 타이밍을 영영 못 잡는다. 잘 만든 물건의 역설이다. 너무 튼튼해서 정을 끊을 수가 없다.
누가 내 맥북을 험담하면
두 번째 이유는 더 비논리적이다. 정이 들어버렸다.
누군가 "그거 아직도 써? 느리지 않아?"라고 물으면, 머리로는 맞는 말인 걸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끈한다. 내 맥북이 험담을 듣는 게 싫다. 옆에서 그런 말이 들리면, 화면을 살짝 돌려 안 들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내 새끼 흉보는 것 같아서.
기계한테 무슨 감정이냐 싶지만, 6년을 같이 보낸 물건이다. 이 위에서 밤새 과제를 했고, 회사 일을 했고, 누군가에게 긴 메일을 썼고, 울면서 일기를 쓴 날도 있었다. 키보드에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까지고, 트랙패드가 반질반질해진 건 그냥 마모가 아니라 기록이다. 그 시간을 "느린 구형"이라는 한마디로 정리당하면, 내 시간까지 같이 폄하당하는 기분이 든다.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이미 못 버린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직접 만든 함정이다. 꾸며버렸다.
맥북을 사면 누구나 한다. 마음에 드는 케이스를 씌우고, 충격 방지 커버를 두르고, 좋아하는 스티커를 하나둘 붙인다. 그 스티커들은 여행지에서 산 것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브랜드 굿즈이기도 하고, 친구가 준 것이기도 하다. 한 장 한 장이 작은 추억이다.
문제는 이게 못 버리게 만든다는 거다.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그 맥북은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 된다. 똑같은 모델이 백만 대 있어도, 이 스티커 조합은 내 것뿐이다. 새 맥북으로 옮기려 해도 스티커는 깨끗하게 안 떼진다. 그렇게 케이스와 스티커가, 배터리가 30분도 못 가는 이 기계를 끝까지 붙잡아둔다. 성능이 아니라 추억이 수명을 늘린다.
그런데 솔직히, 바꾸면 행복하다
여기까지 읽고 "맞아, 끝까지 쓰자"라고 결심했다면, 잠깐. 솔직해지자. 바꾸면 사실 행복하다.
새 맥북은 배터리가 하루 종일 간다. 충전기를 안 들고 나가도 된다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구형을 쓰는 사람은 잊고 산다. 화면은 비교가 안 되게 밝고 선명하다. 앱을 열면 기다림 없이 바로 뜨고, 무거운 작업도 팬 소리 없이 처리한다. 게다가 요즘 건 USB-C 타입을 제대로 지원해서, 케이블 하나로 충전과 화면 출력과 데이터 전송이 다 된다. 구형의 답답함을 매일 견디던 사람이라면, 새 기계의 첫 일주일은 거의 신세계다.
이게 진실이다. 실용만 따지면 바꾸는 게 맞다. 배터리 갈 돈, 느려서 날리는 시간, 충전기를 늘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다 더하면, 새 맥북 값이 아깝지 않을 때가 온다. 통계가 말하는 "교체 시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macOS 보안 업데이트가 끊기고, 수리 부품이 사라지고, 작업이 자꾸 멈추기 시작하면, 그때는 보내주는 게 맞다.
그럼에도, 추억 때문에 간직하는 당신에게
그런데도 우리는 서랍 속에, 책상 한구석에 옛 맥북을 둔다. 새것을 쓰면서도 옛것을 못 버린다.
나는 이게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건에는 두 종류의 값이 있다. 성능으로 매기는 값, 그리고 시간으로 매기는 값. 성능의 값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지만, 시간의 값은 오히려 쌓인다. 사과에 불이 들어오던 친구의 맥북은 중고 시세로는 거의 0원이지만, 친구에게는 십 년의 무게가 담긴 물건이다. 그 두 값은 같은 저울에 안 올라간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일상의 도구로는 새 맥북을 쓰자. 긴 배터리와 좋은 화면과 빠릿한 반응을 마음껏 누리자. 그건 행복한 일이고, 죄책감 가질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옛 맥북은 버리지 말고, 추억의 물건으로 자리를 옮겨주자. 스티커가 붙은 그 케이스째로, 가끔 열어보는 앨범처럼.
기계를 오래 쓰는 건 궁상이 아니다. 정을 붙일 줄 안다는 뜻이다. 너무 빨리 새것으로 갈아타는 시대에, 낡은 물건 하나를 끝까지 아끼는 마음은 오히려 귀하다. 친구가 흰 맥북을 못 버리는 것도, 내가 6년 된 맥북을 못 버리는 것도, 결국 같은 마음이다. 우리는 기계를 못 버리는 게 아니라, 그 기계에 담긴 시간을 못 버리는 거다.
당신의 책상 위에도 그런 맥북이 있다면,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바꿀 때가 되면 바꾸되, 옛것은 미워하지 말고 보내주자. 한때 당신의 모든 밤을 함께 밝혀준 물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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